그림이야기

[스크랩] 진단타려도

갯사랑pagrus 2008. 8. 10. 18:01

 

 

진단(陳?, 872-989)은 중국 당나라 말에 태어나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초기까지 살았다.

이 시기에 주전충이 황소의 난을 토벌한 후 세력을 키워 국호를 ‘양’(梁)으로 바꾸면서 290년간 이어온 당나라가 서기 907년 역사의 막을 내렸다. 그 이후 960년 송나라 건국 때까지 약 50여 년간 오대십국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이 반세기 동안에 중국의 왕조는 다섯 번이나 바뀌었고 작은 국가들도 열이 넘었다. 나라의 평균 수명이 십여 년에 불과했으니 세상은 극도로 혼란했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진단은 일신에 경국제세의 큰 재주를 지녔으나 산속에 은둔하고서 다섯 왕조의 빈번한 명멸을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한 왕조가 망하고 다른 왕조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늘 마음이 아픈 듯 며칠동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한번은 그의 이러한 심경을 7언 율시로 읊었다.

十年踪迹走紅塵 십년종적주홍진
回首靑山入夢頻 회수청산입몽빈
紫陌縱榮爭及睡 자맥종영쟁급수
朱門雖貴不如貧 주문수귀불여빈
愁聞劍戟扶危主 수문검극부위주
悶聽笙歌?醉人 민청생가괄취인
携取舊書歸舊隱 휴취구서귀구은
野花啼鳥一般春 야화제조일반춘

십년의 발자취 홍진 속에 빠져 있는데
머리를 청산으로 돌려 자주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도성의 번잡한 길이 비록 영화롭지만 다툼이 졸음에 미치겠는가
화려한 저택이 비록 귀하지만 가난보다 못하다
위태한 임금을 칼과 창이 보호한다는 말을 근심스럽게 들으며
생황소리 노랫소리, 술취한 사람의 떠들썩한 소리 듣기도 민망하다
옛날 서책들 챙겨서 옛 은거지로 돌아오니
들꽃 피고 새우는 봄은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이 시는 혼탁한 정치와 세상에 대한 그의 불편한 심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진단은 흰 나귀를 타고 개봉으로 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송 태조 조광윤이 나라를 개국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라 천하통일의 새 국면이 열었다고 알려 주었다.

이때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박장대소하다가 그만 타고 있던 나귀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그는 “천하는 이제부터 안정되리라!”하고 외쳤다.

이 일이 있고부터 화산에 은둔하며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송 태조 조광윤이 여러 차례 조서를 내려 만나고자 했으나 한사코 나타나지 않았다.

조선의 윤두서가 그린 '진단타려도'

진단이 천하를 걱정하다가 송나라로 통일되었다는 소식에 나귀에서 떨어졌다는 고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1700년대에 살았던 윤두서(恭齋 尹斗緖)가 이 재미있는 소재를 그냥 넘겨 버릴 리 없다.

그는 당파 싸움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면서 비단위에 ‘진단타려도’(陳?墮驢圖)를 그렸다. 이 그림을 본 조선임금 숙종(肅宗)이 1715년(재위41년)에 그림 위 좌측상단에 ‘제시’(題詩)를 몸소 지어 글씨를 썼다.


希夷何事忽鞍徙 희이하사홀안사
非醉非眠別有喜 비취비면별유희
夾馬徵祥眞主出 협마징상진주출
從今天下可無? 종금천하가무리

희이선생 무슨 일로 홀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요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송 조광윤)이 나왔으니
지금부터 천하엔 근심이 없으리라.

 

출처 : 이정하!
글쓴이 : 이정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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